‘더 라스트 블랙 맨 인 샌프란시스코(The Last Black Man in San Francisco, 2019)’는 ‘도시’에 대한 영화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집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관한 영화였어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부서지고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남자의 ‘소유되지 않은 그리움’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1.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착
·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 없는 집
주인공 지미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친구 몬트와 함께 살아가요. 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과거의 집**에 머물러 있어요. 지미는 그 집을 자신의 아버지가 지었다고 믿고, 지금은 다른 백인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집을 몰래 찾아가 관리를 해요. 마치 ‘그 집이 나를 잊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요.
· 공간에 얽힌 감정의 밀도
그 집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에요. 그 안에는 지미의 가족사, 성장기, 정체성, 그리고 도시의 역사까지 녹아 있어요. ‘내가 나였던 공간’이라는 감정이 묻어나는 집이죠. 그래서 지미는 아무리 쫓겨나도 그 집을 포기하지 못해요.
· 누가 도시의 주인인가?
샌프란시스코는 개발과 재개발로 급변하고 있어요. 오래된 흑인 공동체는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들의 기억과 문화는 부동산의 숫자에 밀려 사라져요. 영화는 이를 아주 조용한 분노로 보여줘요.
2. 시적인 연출과 현실적인 고통
· 말보다는 이미지로 말하는 영화
이 영화는 대사보다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요. 지미가 집 앞에 서 있는 장면, 몬트가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장면,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이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 모든 장면이 마치 시처럼 천천히 흘러가요. 그 느린 흐름이 처음엔 낯설지만, 나중엔 위로가 돼요.
· 도시 풍경의 반어법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주인공에게는 ‘소외의 배경’이에요. 바다, 언덕, 빛나는 저택들이 오히려 그가 소속되지 못한 세상을 강조해요. 그래서 이 영화는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더 슬퍼요.
· 진짜 친구라는 존재
지미 곁엔 항상 친구 몬트가 있어요. 그는 말도 많지 않고, 행동도 조용하지만 지미를 지지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걷는 인물이에요. 말보다 곁에 있는 힘을 보여주는 몬트 덕분에 이 영화는 외롭지만 고립되지 않아요.
3. 정체성과 소유의 간극
· ‘나는 이 도시의 일부인가?’
지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집을, 이 도시를 사랑해도 되는가?” 그 질문은 결국 ‘이 사회에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죠. 소유할 수 없는 것에 애착을 가지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이 영화는 알려줘요.
· 사람의 기억은 누가 지켜야 하나
도시는 변하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요.** 지미의 행동은 그것에 대한 저항이에요. ‘기억도 사라지면 안 된다’는 의지처럼 보여요. 그래서 그의 행동은 이상해 보이면서도 눈물이 나요.
· 집을 잃는다는 것은?
영화는 집을 잃는다는 게 단순한 이사나 퇴거가 아니라 ‘나를 구성했던 일부가 사라지는 일’이라고 말해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아픈지, 지미의 표정을 통해 조용히 전달되죠.
결론: 집은 건물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
‘더 라스트 블랙 맨 인 샌프란시스코’는 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시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시적인 영화예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속 감정을 따라가게 만드는 이 작품은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정체성 같은 단어를 아주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풀어내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깊이 남는 영화였습니다.